terminal

추억, 애플의 강력한 무기

JMHendrix 2009. 2. 22. 12:26
얼마 전에 '비 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를 보고 내 블로그에
'Be Kind Rewind-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오마주'라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영화에 대한 자질구레한 것은 블로그나 웹 검색에게 미루고,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애뜻하게 생각했던 것은 '과거화가 진행중인 것들에 대한 추억'이다. CD나 LP, 비디오방은 차츰 사라져 가고, 이 모든 것을 디지털 미디어가 대체하고
있다.
손으로 뒤적뒤적 LP나 CD 자켓을 골라 오디오에 얹어 음악을 듣고, 슬리퍼 질질 끌고 비디오가게로 향해 맥주 한캔과 함께 마음에 드는 추억의 비디오를 빌려보던 것들을 이제는 디지털 매체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비디오 가게 가본지 10년이 넘었고, 지금도 CD를 사는 족족 iTunes로
인코딩한 다음 CD 보관함에 넝은 채 한번도 꺼내보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기는 하다.하지만, 새로산 CD의 비닐을 까는 기분과 출근 전 그날 들을 음악을 고르는 설레임, 비디오 가게에서 철지난 명작들 가운데 '영웅본색'을 빌린 후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그 기분'을 잊지는 못한다. '7080' 콘서트와 LP로 음악을 틀어주는 맥주집 등이 꾸준히 호황을 누리는걸 보면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나보다.

이번 iLife '09를 사용해보면서 애플은 '손맛''추억'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디지털화 시키는 데 있어서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는 결론을내리게 됐다. 




iTunes에 처음 사용한 'Cover Flow'가 그랬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찾기 위해 레코드점 진열장을 뒤적거리던 추억이 Cover Flow에는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것은 곧 Mac OS X v10.5 Leopard의 Finder에도 그대로 이식돼 마치 서류 캐비넷이나 책장에서 책이나 파일을 뒤적거리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자료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Mac 사용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능 중 하나인 Exposé도 책상을 정리하는 기본적인 방법을(확 쓸어내기, 늘어놓고 필요한 것 고르기, 종류별로 분류하기) 멋지게 디지털화하고 있다. Spaces 역시 책상 내의 작업 공간을 분할하는 데서 착안한 것이 아닐까?



올해 MacWorld Expo에서 선보인 iLife '09에도 역시 수많은 기능이 추가돼 Mac 사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iLife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iPhoto '09에 추가된 새로운 기능 역시 사진을 다루는 고전적인 방법에 기초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자주 이용하는 사진 현상/인화점의 봉투다. 사진이좀 뭣같은것은 이해 바란다. (디카가 없어서 Photo Booth로 찍었...)



'주문 내용'에는 '인원수'라는 체크 항목이 있다. iPhoto '09의 새로운 기능인 '얼굴' 기능도, 어찌 보면 바로 이 체크 항목에서 시작된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나 행사를 다녀온 후,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 사진에 나온 사람들에게 한 장씩 뽑아주는 광경이 연상된다.
봉투의 체크 항목에는 없지만, 사진을 찍은 여행지나 장소를 중심으로 앨범이나 사진 보관함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진의 GPS 태그를 이용해 분류해주는 '장소' 기능 역시 고전적인 사진 분류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틀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얼굴 인식이나 GPS 태그를 이용한 사진 분류는, 늘 그랬듯 애플이 처음 개발했거나 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바퀴의 재발명'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이미 잘 되어 있는 기술을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있는 기술 잘 활영하는 것도 능력이다. 기존에 있던 기술을 뛰어난 아이디어로 재조합 하는 것 역시 능력이며, 이게 바로 애플의 주무기이다.

음악과 미술, 영화와 문학 등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Retorospective'를 부르짖으며 옛 것에 대한 회상을 모티브로 내걸고 있는 이때, 애플이 이뤄내고 있는 일련의 '업적'이 바로 Mac을 디지털 허브로 이용한 'Digital Retrospective'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